코딩 agent(사람 대신 코드를 쓰고 고치는 AI 도구)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비용을 빠르게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기존 프로그램을 역컴파일(완성된 프로그램을 분석해 원래의 코드 구조를 되살리는 일)해 비슷한 경쟁 제품을 짧은 시간에 내놓는 일까지 가능해지면서, 소프트웨어 기업이 누려 온 가격 결정력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값이 내려갈수록 소프트웨어를 쓰는 양은 오히려 크게 늘어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두 시각을 함께 놓고 보면, 코드를 쓰는 일 자체의 값은 내려가고 경쟁력의 원천은 데이터, 독점 권리, 전력처럼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자산으로 옮겨 가는 흐름으로 읽힙니다.
복제 비용이 무너지면 생기는 일
AI가 소프트웨어 가격을 끌어내리는 소프트웨어 디플레이션 압력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옵니다. 오픈소스 모델과 기존 유틸리티를 흉내 낸 복제품이 기존 소프트웨어의 가격 결정력을 갉아먹고 있고, AI의 도움을 받아 단 $5로 만들어 출시한 게임까지 나왔습니다.
더 큰 질문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소프트웨어도 같은 길을 걷느냐입니다. 코딩 agent로 Adobe Photoshop 같은 대형 프로그램까지 역컴파일하거나 빠르게 재현할 수 있게 되면, 오랜 시간 쌓은 기능 자체는 더는 진입 장벽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그동안 80%가 넘는 매출총이익률(매출에서 매출원가를 뺀 이익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누려 왔지만, 코드를 거의 비용 없이 다시 만들 수 있는 환경에서도 이 수준을 지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비관적으로 보면 값싸고 빠른 복제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지녀 온 시장 가치의 90%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 압력은 벤처 투자로도 번집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문턱이 낮아질수록 같은 시장에 뛰어드는 경쟁자가 늘어납니다. 투자한 회사가 오래 버티며 투자자에게 실제 수익을 돌려줄 수 있을지 판단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값이 내리면 쓰임은 늘어난다
Andreessen Horowitz의 공동 창업자 Ben Horowitz는 이런 소프트웨어 종말론에 선을 긋습니다. 그가 드는 근거는 Jevons paradox(효율이 높아져 단가가 내려가면 전체 사용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입니다. 소프트웨어 한 단위를 만드는 비용이 내려가면 소프트웨어를 쓰는 양과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프트웨어 기업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코드를 쓰는 일만으로는 따로 값을 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봅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글을 펴낼 수 있게 되면서 종이 잡지 산업이 흔한 상품처럼 된 것과 비슷하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AI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평범한 코드 이상을 내놓아야 하고, 깊은 분야 전문성과 다른 곳에 없는 자산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맞춤형 소프트웨어라는 새 수요
늘어나는 수요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기업 맞춤형 소프트웨어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상용 소프트웨어는 개발비가 많이 들어, 그 비용을 회수하려면 업종을 가리지 않는 넓은 고객층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코딩 agent가 코드를 대신 쓰면서 이제는 한 회사의 특정 업무 흐름에만 맞춘 사내 도구도 수지가 맞습니다. 모든 회사에 같은 기능을 파는 기성 SaaS(인터넷으로 구독해 쓰는 소프트웨어)가 채우지 못하던 빈자리를, 회사마다 직접 만든 맞춤 소프트웨어가 채우는 흐름입니다.
개발자 일감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AI가 개발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전체 코드의 양은 몇 자릿수 단위로 늘고 있습니다. agent가 코드의 95%를 쓰더라도 남은 5%, 곧 전체 구조를 설계하고, prompt(AI에 주는 지시문)를 짜 작업을 조율하고, 결과물을 유지보수하는 일은 사람이 맡습니다. 전체 코드가 훨씬 많아진 만큼, 이 5%가 만들어 내는 일감의 절대량은 지금보다 클 수 있습니다.

▲ 늘어나는 맞춤형 사내 소프트웨어
코드가 싸진 뒤에 남는 해자
코드를 누구나 싸게 만들 수 있게 되면 무엇이 경쟁자를 막아 줄까요. 해자(경쟁자가 쉽게 넘보지 못하게 하는 사업상의 방어벽)는 코드 바깥으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독점 계약과 공들인 학습 데이터
Ben Horowitz는 방어력을 갖춘 AI 기업의 예로 ElevenLabs를 듭니다. ElevenLabs는 Burt Reynolds 같은 유명인의 목소리를 독점으로 쓰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오디오북 낭독 등에 쓰고, 미묘한 예외 상황까지 담은 데이터로 모델을 학습시킵니다. 이렇게 다듬은 음성 모델은 기계적으로 옮겨 읽는 음성을 넘어, 다른 언어로도 배우가 실제로 연기하는 것처럼 들리는 영화 더빙을 만들어 냅니다. 코드는 복제할 수 있어도 독점 계약과 공들여 쌓은 학습 데이터는 쉽게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사용자가 쌓아 주는 학습 신호
또 하나의 해자는 데이터와 사용자 피드백 루프입니다. 특정 업종에서 먼저 사용자를 모은 AI 스타트업은 사용자가 쓸 때마다 경쟁자가 따라 할 수 없는 reinforcement learning(결과에 대한 보상 신호로 모델을 개선하는 학습 방식) 신호를 얻습니다. 법률 AI 기업 Harvey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형 로펌을 고객으로 확보하면서 법률 문서 작성 데이터와 실제 업무 흐름을 접하고, 이를 맞춤 학습에 씁니다. 이 순환이 돌수록 모델은 더 정교해지고 고객사의 업무에 더 깊이 자리 잡습니다.
자기 데이터로 키운 작은 모델
데이터가 무기가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Coinbase CEO Brian Armstrong은 사내 데이터로 open-weight 모델(가중치를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쓸 수 있는 모델)인 Qwen 2.5의 90억 parameter(모델이 학습하며 조정하는 수치) 버전을 fine-tuning(이미 학습한 모델을 특정 작업에 맞게 더 학습시키는 방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모델은 부정 거래 방지에서 Claude Opus 4.5 같은 최상위 모델보다 나은 성과를 냈고, 부정 거래를 약 30% 줄이면서도 더 빠르고 훨씬 적은 컴퓨팅 비용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기업 업무에는 값비싼 최전선 모델이 꼭 필요하지 않고, 좁은 업무에 거대한 범용 모델을 돌리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싸지는 코드, 귀해지는 GPU와 전력
소프트웨어와 달리 AI를 돌리는 물리적 기반은 오히려 비싸지고 있습니다. Ben Horowitz에 따르면 AI token(AI가 글을 처리하는 단위) 가격은 내려갔지만 GPU와 데이터센터 건설 비용은 오르고 있습니다. 공사 인력이 모자라고 지역의 정치적 반대도 커 데이터센터를 짓기가 더 어려워졌고, 이 때문에 이미 설비를 가진 쪽에 유리한 공급 부족이 이어집니다. 그는 Amazon CEO Andy Jassy에게서 컴퓨팅과 데이터센터 용량이 2028년 이후까지 모두 예약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전했습니다.
이전 세대 GPU의 쓸모도 길어졌습니다. 3~5년으로 보던 GPU의 수명이 추론(학습을 마친 모델로 답을 만들어 내는 작업)만 맡기면 6~8년까지 늘어나고, NVIDIA H100과 A100 같은 이전 세대 칩도 여전히 높은 임대료를 받습니다. 수요 쪽에서도 둔화 신호는 보이지 않습니다. 최전선 모델 개발사와 스타트업은 여전히 컴퓨팅이 모자라고, 일부 벤처 투자사는 투자한 스타트업에 나눠 주려고 컴퓨팅 용량을 직접 사들입니다.
최근 AI 전용 클라우드 기업들의 주가와 채권 값이 크게 흔들리며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Ben Horowitz는 지금을 2000년 무렵의 닷컴 붕괴와 다르게 봅니다. 당시에는 수요와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따라오지 못하는데 통신망을 대규모로 깔았던 반면, 지금은 AI 수요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도 빚을 지나치게 많이 진 개별 기업은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알고리즘이나 데이터보다 발전 용량과 전력망이 AI 산업의 가장 큰 병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과 전력, 데이터센터 건물을 이미 확보한 쪽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우위를 가진 셈입니다.

▲ 귀해지는 전력과 데이터센터
AI 이용료도 token에서 성과로
AI 자체의 가격 구조도 바뀔 수 있습니다. 최전선 AI 연구소들은 값싼 오픈소스 대안과 경쟁하려고 token 가격을 빠르게 내리고 있습니다. 100만 token 단위로 값을 매기는 지금의 방식은 1999~2000년 무렵 인터넷 광고를 노출 1,000회당 가격(CPM)으로 팔던 시절과 닮았습니다. 광고 시장은 이후 Google이 AdWords와 AdSense로 클릭당 가격(CPC)과 전환당 가격(CPA) 방식을 키우면서 크게 넓어졌습니다. AI도 처리한 token의 양이 아니라 만들어 낸 결과에 값을 매기는 방식으로 옮겨 갈 것으로 보입니다.
소프트웨어 기업과 개발자가 준비할 것
AI는 코드를 쓰고 복제하는 비용을 크게 낮추지만, 소프트웨어 수요 자체를 줄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뀌는 것은 가치가 머무는 자리입니다.
| 구분 | 내용 |
|---|---|
| 값이 내려가는 것 | 코드를 쓰는 일, 기존 앱을 따라 만드는 일, token 단위 AI 이용료 |
| 귀해지는 것 | 깊은 분야 전문성, 독점 라이선스 같은 고유 자산, 사용자가 쌓아 주는 업무 데이터, GPU, 데이터센터, 전력 |
자리마다 할 일도 다릅니다.
- 소프트웨어를 파는 기업: 기능 목록만으로는 값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정 업종의 업무 데이터와 사용자 피드백이 쌓이는 구조, 독점 계약 같은 고유 자산이 있는지 점검하고, AI 기능의 가격을 token 사용량이 아니라 고객이 얻는 결과에 맞추는 방안도 검토할 만합니다.
-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기업: 기성 SaaS가 채우지 못하던 사내 업무를 맞춤 도구로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반복 업무라면 비싼 최전선 모델 API를 기본으로 쓰기 전에, 자사 데이터로 작은 open-weight 모델을 fine-tuning하는 방안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 개발자: 코드를 직접 쓰는 양보다 agent가 쓴 코드를 설계하고 점검하고 유지보수하는 역량이 일감의 중심이 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드가 흔해질수록, 무엇이 복제되지 않는지가 경쟁력을 가를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