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Synopsys가 OpenAI와 함께 칩 설계에 특화한 AI 모델 ’GPT-Synopsys’를 개발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Amazon Web Services(AWS)와 $10억이 넘는 다년 칩 설계 라이선스 계약도 공개했습니다. Synopsys가 투자자 대상 행사인 Investor Day에서 두 협력을 발표하자 주가는 장중 13% 넘게 올라 Nasdaq 100 종목 가운데 상승 폭 상위권에 들었습니다. AI 모델을 만드는 기업과 그 모델을 돌릴 칩을 설계하는 기업이 서로의 도구가 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칩을 만들기 전에 거치는 소프트웨어, EDA

Synopsys의 본업은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 반도체 칩을 설계하고 시험하고 검증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칩은 공장에서 만들기 전에 설계 단계에서 회로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구조와 열이 버티는지를 소프트웨어로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지난 수십 년 사이 20만 개 수준에서 2,000억 개 수준으로 100만 배 늘었습니다.

Synopsys CEO Sassine Ghazi는 Google의 TPU(Tensor Processing Unit, Google이 AI 연산용으로 직접 설계한 칩) 같은 대형 클라우드 기업의 칩은 Synopsys의 설계·검증 소프트웨어 없이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실리콘 회로뿐 아니라 구조와 열 특성까지 검증 대상이라는 설명입니다.

생성형 AI가 코드를 대신 쓰면서 소프트웨어 기업이 밀려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칩 설계처럼 전문성이 깊은 소프트웨어는 오히려 대체하기 어려운 도구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도 그런 흐름을 보여 주는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칩 배치도와 열 분포 지도를 띄운 설계 검증 작업 화면

▲ 설계 단계의 칩 검증

OpenAI와 만드는 GPT-Synopsys

이번 발표에서 AI 업계가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GPT-Synopsys입니다. Synopsys와 OpenAI는 추론 능력을 갖춘 AI 모델을 반도체 설계 작업 흐름과 여러 공학 분야를 아우르는 설계 작업에 직접 넣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Ghazi CEO의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최신 frontier model(가장 앞선 성능의 대형 AI 모델)은 뛰어난 추론 능력을 갖췄지만, 엔지니어를 실제로 돕으려면 칩 설계에 대한 깊은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 OpenAI가 Synopsys와 손잡은 것은 Synopsys가 주요 공학 분야의 디지털 설계 소프트웨어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반대로 frontier model은 알고리즘 구조마다 효율을 끌어올리려면 그에 맞춘 전용 칩이 필요합니다.

AI 기업들은 NVIDIA나 AMD 같은 반도체 기업의 범용 칩에만 기대지 않고 자체 칩을 설계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OpenAI가 칩 설계 도구 기업과 모델을 함께 만드는 것은, AI 모델이 칩 설계를 돕고 그렇게 설계한 칩이 다시 AI 모델을 돌리는 구조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은 방향에 가까워서, GPT-Synopsys가 설계의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Ghazi CEO는 OpenAI와 Anthropic 같은 생성형 AI 기업이 상장하면 재무 여력이 커지고, 그만큼 칩 투자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이는 Synopsys 경영자의 기대이며 확정된 일정이나 계획은 아닙니다.

AWS 계약, 라이선스료에 로열티를 더한 구조

AWS와 맺은 계약은 클라우드 인프라와 AI 작업에 맞춘 전용 칩, 곧 custom silicon(특정 작업에 맞춰 직접 설계한 칩)을 설계하는 데 쓰입니다. 범용 프로세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작업에 맞는 칩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항목 내용
규모 $10억 이상
기간 여러 해에 걸친 다년 계약
대상 클라우드 인프라·AI 작업용 전용 칩 설계
수익 구조 선불 라이선스료 + 생산량에 따른 로열티

눈에 띄는 것은 수익 구조입니다. Synopsys는 처음에 라이선스료를 받고, AWS가 칩 세대를 거듭하며 생산량을 늘리면 로열티를 계속 받습니다. 투자자들이 이 구조에 크게 반응한 것은 매출이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내다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메모리가 부족할 때 설계로 대응하는 방법

AI 칩 수요가 늘면서 HBM(high-bandwidth memory, AI 칩에 붙이는 고대역폭 메모리)과 전력 공급이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Ghazi CEO는 Synopsys 소프트웨어가 설계 단계에서 선택지를 남겨 두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줄인다고 설명합니다.

대형 클라우드 기업은 칩의 연결 구조를 설계할 때 Micron,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메모리를 바꿔 쓸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한 공급처의 물량이 막혀도 다른 공급처의 메모리로 넘어갈 수 있게 처음부터 설계에 여지를 두는 것입니다. 한국 메모리 기업이 이런 선택지 안에 들어 있다는 점은 국내 독자에게도 눈여겨볼 대목으로 보입니다.

로봇 팔과 날개를 와이어프레임으로 재현한 digital twin 장면

▲ physical AI와 digital twin

Ansys 인수와 physical AI

Synopsys는 공학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기업 Ansys를 $350억에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 인수에 따른 통합 위험과 높은 부채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Ghazi CEO는 Ansys의 시뮬레이션 도구가 자동차부터 항공우주까지 여러 산업에서 물리 현상을 모델링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비행기, 테니스 라켓, 자동차 시스템까지 실물을 만들기 전에 디지털 시제품으로 시험할 수 있습니다.

로봇처럼 현실에서 움직이는 physical AI(물리 세계에서 동작하는 AI 시스템)를 만들려면 digital twin(실제 사물을 소프트웨어 안에 똑같이 재현한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 Ghazi CEO의 설명입니다. 하드웨어를 만들기 전에 구조 역학, 유체 흐름, 전자기 특성을 함께 시뮬레이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칩 설계 소프트웨어에 물리 시뮬레이션을 더해, 칩부터 그 칩이 들어갈 기계까지 한 생태계에서 설계하게 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같은 날 궤도에 오른 Google의 TPU

같은 날에는 AI 칩과 관련한 또 다른 소식도 있었습니다. SpaceX의 Falcon 9 로켓이 짙은 안개 속에 캘리포니아 Vandenberg 우주군 기지에서 발사돼, 냉장고만 한 시험 위성 ’MVP’를 궤도에 올렸습니다. 이 위성은 Google이 Planet Labs와 함께 우주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기 연구 ’Project Suncatcher’의 일부로, Google TPU 4개를 싣고 지상 데이터센터 서버에 견줄 연산 능력을 시험합니다.

정리: AI 모델과 칩 설계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세 갈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OpenAI는 Synopsys와 GPT-Synopsys를 만들어 추론 모델을 칩 설계 작업에 넣으려 합니다.
  2. AWS는 $10억이 넘는 다년 계약으로 자체 칩 설계에 Synopsys 도구를 씁니다.
  3. Synopsys는 Ansys 인수로 칩 설계에 물리 시뮬레이션을 더해 physical AI 시대를 겨냥합니다.

반도체나 AI 인프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GPT-Synopsys가 실제로 어느 설계 단계에 적용되는지, 엔지니어의 작업을 얼마나 바꾸는지에 대한 후속 공개를 지켜볼 만합니다. 칩이나 하드웨어를 설계하는 실무자라면 제조 전에 설계 검증과 다중 물리 시뮬레이션을 앞당겨 결함을 잡고, 메모리와 위탁 생산에서 한 공급처에 묶이지 않도록 설계 단계부터 선택지를 남겨 두는 방식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