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AI에 기대할 일은 진료를 대신하는 것보다 진료 주변의 반복 작업을 덜어 내는 쪽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진료와 함께 공부와 강의 준비까지 하는 한 의사는 모든 일을 해결해 줄 앱 하나를 찾는 대신, 일마다 다른 AI 도구를 하나씩 둡니다. 수백 쪽 진료 지침의 요약은 NotebookLM, 쌓아 둔 노트 검색은 Obsidian Copilot, 진료 현장의 근거 확인은 OpenEvidence와 Heidi, 진료 기록 초안은 AI scribe(진료 대화를 듣고 기록 초안을 써 주는 AI)인 Lyrebird가 맡는 식입니다. 의사는 이 도구들을 이끄는 쪽에서 일을 나눠 주고, 결과를 검토하고, 최종 판단을 내립니다. 출처를 확인하고 초안을 고치는 일은 끝까지 의사에게 남는다는 점이 이 업무 흐름의 핵심입니다.

만능 앱 대신 일마다 다른 도구를 둡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의사와 수련 중인 의사 사이에서는 AI가 의사를 대신하게 될지,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여러 AI 도구를 써 보는 사람도 많지만, 도구들을 어떻게 엮어야 효율이 나는지에 대한 틀이 없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 업무 흐름의 출발점은 AI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AI를 사람을 대체할 존재가 아니라 진료팀의 직원으로 봅니다. 의사는 회사의 대표처럼 도구마다 정해진 일을 맡기고, 최종 내용과 임상 판단에 대한 권한은 직접 쥡니다. 반복되는 행정 단계를 일일이 손으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지만, 최종 결과물을 확인할 책임은 그대로 의사에게 있습니다. 도구가 일하는 방식을 정하게 두지 말고 의사가 도구를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원칙도 여기서 나옵니다.

도구를 고르는 기준도 분명합니다. 의사로서 하는 모든 일을 플랫폼 하나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한 가지 일을 잘 해내는 도구를 여러 개 엮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입니다. 강의 자료를 다듬는 AI agent(여러 단계의 작업을 이어서 처리하는 AI)까지 포함해 영역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역 도구 맡기는 일
지침 조사와 정리 NotebookLM 긴 지침을 주요 변경 사항으로 요약하고 암기 카드, 퀴즈, 마인드맵 생성
지식 저장과 검색 Obsidian, Obsidian Copilot 공부 노트, 지침, 증례를 한곳에 모으고 평소 말로 질문
읽을거리 관리 Readwise Reader, Readwise, Obsidian Web Clipper 글 저장과 하이라이트 복습, 학술지 글을 공부 노트로 변환
진료 현장 근거 OpenEvidence, Heidi 진단과 환자 관리 질문에 출처가 달린 답 제시
강의 자료 AI agent 여러 자료를 강의 순서대로 재구성하고 초안 작성
진료 기록 Lyrebird 진료 대화를 듣고 기록, 의뢰서, 서식 초안 작성

수백 쪽 지침은 NotebookLM으로 먼저 줄입니다

새로 나온 만성 콩팥병 진료 지침이 수백 쪽에 이른다고 해 봅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대신 지침 PDF 파일 전체를 Google의 NotebookLM(올린 자료를 바탕으로 요약하고 질문에 답하는 AI 노트 도구)에 올립니다. NotebookLM은 긴 문서를 주요 변경 사항과 꼭 알아야 할 핵심으로 압축합니다.

요약이 나오면 기억에 남기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요약을 바탕으로 스스로 답을 떠올려 보게 하는 암기 카드와 객관식 퀴즈를 만들게 하고, 복잡한 임상 개념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여 주는 마인드맵도 만듭니다. 몇 시간이 걸릴 읽기와 정리를 몇 분 만에 끝내는 연구 조수를 하나 둔 셈입니다. 다만 요약과 퀴즈도 도구가 만든 결과물이므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책임은 의사에게 있습니다.

쌓인 노트는 Obsidian에 모으고 평소 말로 묻습니다

정리한 내용은 Obsidian으로 옮깁니다. Obsidian은 노트를 Markdown(간단한 기호로 서식을 표시하는 텍스트 형식) 파일로 쌓고 서로 연결하는 노트 앱입니다. 여러 해 동안 모은 공부 노트, 진료 지침, 증례 분석이 모두 이 개인 의학 지식 저장소에 들어 있습니다.

저장소가 커질수록 필요한 내용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저장소 위에서 바로 작동하는 AI plugin(앱에 기능을 덧붙이는 추가 프로그램)인 Obsidian Copilot을 붙입니다. 몇 달 치 기록을 일일이 넘겨 보는 대신 평소 말하듯 질문하면, Obsidian Copilot이 저장소에 든 노트만을 근거로 답을 정리해 줍니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 속쓰림 환자 관리에 대해 정리해 둔 요점
  • 고혈압 관리 절차
  • 청소년 여드름 상담 때 설명할 내용
  • 급성 심근경색 관리 단계

답의 근거가 자신이 직접 정리해 둔 노트라는 점이 이 방식의 장점으로 보입니다. Obsidian의 graph view(노트 사이의 연결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기능)를 쓰면 새로 익힌 지침, 증례, 기존 지식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모니터 속 그물망 그래프로 노트와 지침, 증례가 서로 이어진 개인 지식 저장소

▲ 노트와 지침을 잇는 지식 저장소

읽은 글은 Readwise와 Obsidian Web Clipper로 붙잡아 둡니다

날마다 읽는 글은 그냥 두면 금세 잊힙니다. 이를 막으려고 Readwise 계열 도구를 업무 흐름에 넣습니다. 하루 중 마주친 온라인 기사, 웹 페이지, 전자책의 한 장을 Readwise Reader(읽을 글을 저장하고 표시하며 읽는 앱)에 모아 둡니다. 매일 아침에는 Readwise의 복습 기능이 예전에 표시해 둔 하이라이트를 다시 보여 줍니다. 간격을 두고 되풀이해 보며 기억을 굳히는 spaced repetition(간격 반복 복습) 방식입니다.

Readwise에 들어 있는 AI 도우미에게 지난 하이라이트를 물을 수도 있습니다. 3주 전에 읽고 표시해 둔 글에서 특정 약의 처방 권고를 다시 찾아내는 식입니다.

깊이 공부할 글은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인 Obsidian Web Clipper로 저장합니다. 예를 들어 호주의 일반의 대상 학술지에 실린 피임 관련 글을 이 도구로 저장하면, 본문을 뽑아 정해진 형식의 공부 노트로 바꾼 뒤 Obsidian 저장소에 자동으로 넣어 줍니다.

진료 중 근거 검색은 출처 확인까지가 한 과정입니다

개인 노트만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있습니다. 환자를 보는 자리에서 근거를 빨리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이때 쓰는 도구가 OpenEvidence(의학 근거를 찾아 출처와 함께 답하는 서비스)와 Heidi(근거 검색과 진료 기록 기능을 갖춘 의료 AI 도구)입니다. 두 서비스 모두 진단과 환자 관리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연구 도우미를 갖추고 있으며, 답을 항목별로 정리해 인용 문헌과 참고 문헌 목록을 함께 붙입니다.

예를 들어 호르몬 검사라면 언제 검사를 고려해야 하는지, 결과 수치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언제 검사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차례로 물을 수 있습니다. Heidi는 지역 근거를 앞세우는 도구여서 호주 일차 진료 지침과 관련 참고 자료를 먼저 보여 줍니다.

반드시 짚어야 할 주의점은 hallucination(AI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현상)입니다. 진료 현장용 AI 검색 도구와 연구 도우미도 자료나 참고 문헌을 꾸며 내는 일이 잦을 수 있습니다. AI가 내놓은 결과에 대한 법적, 윤리적, 임상적 책임은 모두 의사에게 있으므로, 환자 관리를 바꾸기 전에 인용 번호를 따라가 원래 논문과 지침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도구는 의료진이 근거를 찾는 데 쓰는 것입니다. 일반 독자가 비슷한 AI 답변을 자신의 진단이나 치료 결정에 그대로 쓰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건강에 관한 판단은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강의 자료는 AI가 재배열하고 구조는 의사가 정합니다

자료가 Obsidian에 쌓이면 강의 자료를 만드는 데도 AI를 씁니다. 여러 자료를 AI agent에 맡겨 강의에 필요한 순서대로 배열하고, 복잡한 지침을 전문의 자격이나 면허 등록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맞는 명료한 설명으로 바꿉니다.

이때도 강의의 논리를 정하는 쪽은 AI가 아닙니다. 구조와 말투, 임상적으로 무엇을 먼저 다룰지는 의사가 정합니다. AI는 의사가 고른 자료를 바탕으로 형식을 바꾸고, 내용을 합치고, 첫 초안을 쓰는 일만 맡습니다.

진료 기록은 AI scribe가 초안을 쓰고 의사가 확정합니다

진료 한 건마다 기록을 직접 입력하는 데는 보통 5분가량이 듭니다. 진료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기록을 만드는 AI scribe는 이 시간을 줄여 줍니다. 여기서 쓰는 도구는 Lyrebird입니다. Lyrebird는 호주의 일차 진료용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인 Best Practice 같은 프로그램에 바로 연동되고, 진료 대화를 들은 뒤 진료 기록, 의뢰서, 각종 서식을 자동으로 작성합니다. 처방 갱신을 위한 약물 검토, 검사 결과 설명, 예방 진료 상담처럼 자주 하는 진료 유형마다 템플릿을 따로 만들어 둘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의사와 환자 사이를 가로막던 컴퓨터 화면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의사는 자판을 두드리는 대신 환자와 눈을 맞추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화면을 옆으로 치우고 환자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의사와 기록 초안

▲ 화면 대신 환자를 보는 진료

대신 확인 과정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AI scribe는 받아쓰기 오류를 낼 수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실수가 섞이는 일도 잦습니다. 진료가 끝나면 바로 초안을 읽고 고쳐 확정해야 하며, 꼼꼼히 읽지 않은 기록을 그대로 저장하거나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검토 시간을 더해도 직접 입력할 때보다 일주일에 몇 시간의 행정 업무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호주에서 아직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는 해외 의대 졸업생이나 의대생에게는 이런 진료 기록 도구가 당장 쓸 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여섯 단계 흐름, 시작은 도구 하나

전체 흐름은 조사, 종합, 저장, 맞춤, 적용, 기록의 여섯 단계로 정리됩니다. 지식을 찾아 다듬고, 자기 것으로 쌓아 쓰임에 맞게 고치고, 진료에 적용해 기록으로 남기는 순서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각 단계의 도구는 한 가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고르고, 모든 일을 어설프게 하는 도구는 피합니다.

이 업무 흐름에서 AI는 의사가 가진 임상 역량을 키워 주는 도구일 뿐 진단 추론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의사에게 더 현실적인 위협은 AI 자체보다, 효율적인 AI 업무 흐름을 갖춘 동료에게 뒤처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시작은 다음과 같이 해 볼 수 있습니다.

  • 도구를 한꺼번에 바꾸지 말고 하나를 골라 일주일 동안 익힌 뒤 다음 도구를 더합니다.
  • 긴 지침은 NotebookLM에 올려 요약과 퀴즈로 공부하되, 내용은 직접 확인합니다.
  • 근거 검색 AI의 답은 인용된 원문을 열어 확인한 뒤에만 진료에 반영합니다.
  • AI scribe가 쓴 기록 초안은 진료 직후 읽고 고친 다음 확정합니다.
  • 강의 자료나 문서의 구조, 말투, 우선순위는 의사가 정하고 AI에는 재배열과 초안만 맡깁니다.